오늘 이 글을 쓸 수 있기까지 예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1979년 8월에 군복무를 마쳤으며, 1980년 10월경에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 소재하는 삼
보정밀(주)에서 총무로 재직하던중 기침을 하였는데 그와 동시에 금방 터진듯한 붉은 피가
한웅큼 나왔읍니다.
놀라서 부평동에 있는 부산내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각종 검사를 해보니 폐결핵 초기라
는 진단이 나왔읍니다.
그 당시에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하고 원장님이 시키는대로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통원치료
를 했읍니다.
부산영락교회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며 때에 따라서는 금식기도를 1주일씩 한적도 있는데 교
회일로 과로를 한 적도 많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젊었고 건강한 몸이라 6개월 후에는 다 나았다고 하여 별 생각 없이 치료를
중단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였읍니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술도 마셨고(가끔 필요에 의하여 과음을 한적도 있으나 정작 술
에는 취미가 없음), 일을 할때는 다른사람보다 열심히 했읍니다. 담배는 맛이 없어 아예 배
우지도 않았읍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가 언제인가 모르게 피곤하고 기침이 나는등, 처음과 같이 피는 나오지
않았지만 폐결핵 증상이 다시 나타난 것이 아마 그로부터 일년후 정도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치료를 하지않고 그냥 세월을 보내다 보니 급기야는 각혈을 하는데 한번 터지면 시뻘
건 피를 직경 20센티 높이 25센티의 휴지통에 가득 받아냄니다.
약국에서 도란사민(지혈제)을 사서 먹고 피를 멈추면 하루하루 혈담의 색깔이 달라지고 6개월
정도 지나면 맑은 침과 같은 가래가 나오면서 마른 기침을 하게 됩니다.
그때 또 터져요...
또다시 6개월... 또?... 나참 미치겠네 !!!
그렇게 세월이 흘러 1997년 12월 5일 오전 11시 가만히 있어도 숨이 가쁜데 심호흡을 하여도
진정이 안되더군요.
참다가 참다가 밤 11시경이 되어 머리가 쭈삣하면서 억지로 견딜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119에 신고를 했읍니다.
초량에 있는 침례병원에 실려가 응급실로해서 다음날 아침 중환자실로 직행했읍니다.
폐가 엉망진창 인데다가 폐에 구멍이 뚫려 공기가차서 폐를 밀어부치는 바람에 ...
가슴에 구멍을 뚫고 인공호흡기 신세를 졌읍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5일만에 승진, 일반환자실로 옮겼읍니다.
20일 정도 지나니까 이병원에서는 더이상 할 일이 없다면서 나가달라고 하더군요.
좀더 있게 해달라고 아무리 사정을 해도 별 수가 없더군요.
마산 결핵요양원에 입원신청을 세번 했는데 입원 불가, 그래서 사직동에 있는 부산의료원으
로 옮겼으나 5일만에 나가라고 하더군요.(역시 할 일이 없다면서...)
집에 가서 누워있는데 순천에 살고있는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순천에 결핵요양원이 있는데 아는 사람이 폐결핵으로 다 죽게되어 요양원에 맡기면서
죽으면 장사를 치루어달라고 하며 던져놓다시피 하고 왔는데 살아나서 이제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더라며 거기에 가 보라더군요.
그래서 98년 1월 21일 구정 직전일에 요양원(순천기독결핵재활원)에 입원을 했읍니다.
요양원에 처음 도착했을때의 전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택시를 타고 올라가는데 별장이
산속에 쫘악 펼쳐지더군요. 4호실에 병실을 배치받았는데 3명이 사용하게 되어있는데 이미
2분이 계시더군요.
그날부터 정식으로 투병생활에 돌입을 했읍니다.
항생제 주사를 맞으니까 하루종일 온몸에 열이 펄펄나고 머리가 부숴질듯이 아픈데 미칠지경
이었읍니다.
1월의 그 추운 겨울에도 전기장판을 끄고 옷을 완전히 벗은채로 자는데 잠은 그냥 누워있는
것입니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지요.
그 당시에는 체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왔읍니다. 4호실에서 복도끝에 있는 화장실까지는 약
20미터인데 최소한 다섯번은 중간에 주저앉아 숨을 돌렸다가 가야합니다.
화장실, 세면장, 주방에 들락거리는 것이 보통 중노동이 아니었읍니다.
하고있는 몰골은 뼈만 남아 거의 ... 표현을 못하겠네요.
간호사님이 엉덩이에 주사를 놔야 되는데 시커먼 엉덩이를 내놓으려니 미안해서 바지를 못
내리겠더군요.
하여튼 그렇게 열흘정도 견디니까 숨통이 확 열리더군요.
아 ! 이제는 살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읍니다.
그로부터 두달동안은 거의 대규모 전쟁이었읍니다.
새벽 4시에 기상하여 1시간 가래와의 전쟁, 5시에 소고기스프를, 6시에 세면장,화장실,
다시 잠, 8시에 아침식사, 또 잠, 10시경에 주사맞고, 10시반에 참, 또 잠, 12시반에 점심
식사, 또 잠, 오후 3시에 참, 잠, 5시반에 저녁식사, 잠, 10시에 참, 밤에는 편히 잠자기를
포기...
이렇게 저렇게 부대끼다가 또다시 하루가 시작됩니다.
두달이 지나니까 체중이 거의 10키로가 늘더군요(늘은 몸무게 53키로, 키는 175센티임)
몸무게가 느니까 숨이 더 차더군요. 그래서 화장실에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걸리네요.
그래서 더이상 체중불리기 작전을 중지하고 소규모 전쟁에 들어갔읍니다.
그로부터 1년 또1년 또1년, 이제는 정상체력을 회복하여 보통사람의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3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아마도 다른 요양소를 찾았다면 지금 이글을 여러분이 보지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20년전에 이 요양원에 입원을 하였더라면 6개월에 완치를 한후에 다시는 재발하는
사태가 없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20년 30년 병력을 가진 다른 환자나 중환자들을 보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나는 다시는 이길을 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치료를 했을것이고 완치후에도 조심을
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입원하는 다른 환자들의 대부분이 일반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오는데
이구동성으로 그 병원에서 치료가 안되더라고 합니다.
가산을 탕진하고 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회복되는것이 눈에 뜨입니다.
하여튼 내가 생각해봐도 다른 병의원들은 전문성이 없더군요. 나도 두 종합병원에서 쫓겨
났으니까요.
20년간의 긴 병력과 생활을 생략해서 적었읍니다.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읍니다.
그리고 사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들이 다른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떳떳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상세하게 밝히지도 못하는 것을 용서바랍니다.
이땅에 이런 요양원이 있는것과, 있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 땅에 요양원을 세워주신 인애자 원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30여년을
한결같이 이 요양원을 지키며 환자들을 돌보아 오신 최영아 권사님, 의사 선생님, 정신적인
지주로서 사명을 다 하시는 전도사님, 환자들의 온갖 엉석과 짜증을 다 받아주시는 간호사님
그리고 환자들의 투병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모든것을 관리하는 전 임직원들께 감사를 드립
니다.
우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무한하신 영광과 사랑이 이 순천기독결핵재활원의
전 임직원들과 이곳에 있는 모든 환자분들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이글을 읽는 모든분들
위에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