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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삶을 넘어 |
고통의 삶을 넘어
차창 밖으로 어두움의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가고 어렴풋이 투영되듯 비쳐지는 나의 모습은
이미 죽음을 예견할 수 있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지쳐버린 나의 두운은 허공에 머물고 알지
못할 눈물만이 흐르고있었다
1979년 이제 내나이 17세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젊은 나이지만 더 이상 내게는
아무런 삶의 미련도 아쉬움도 남나있지를 못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업의 실패로 찾아든
가난은 우리식구들을 몸을 허약하게 만들었고 그기회를 이용한여 결핵이라는 무서운
고통의 병은 어머니의 죽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둘 우리식구들의 육체를 갉아먹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막내인 나의 몸까지도 침범하여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때 나는 더 이상
달리기를 할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이미 내몸의 가슴속에선 결핵균으로 인하여 썩어가고
있음을 스스로이 느낄수 있었을 때 학교도 공부도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결국
어린나이지만 모든 것을 체념했고 술과 담배 그리고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약물에 중독이
서서히 중독되아 갔다.
언제나 나에게 찾아올 죽음의 그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
교련연습을 마치고 교실에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을 때 가슴이 답답하여지는 것을 느꼈며
심한기침이 터져나오더니 갑자기 입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급하게 터져나오는 피를 주체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내가토해놓은 피바닦에
쓰러져버렸다.
그후 모든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문은 결국 학교의 책임자에게까지 전해지고
나는 언제든 다시 오면 받아준다는 얄팍한 회유의 소리를 들으며 자퇴 아닌 자퇴를 당해야 했다.
막상 죽음을 생각하지만 이넒은 서울하늘아래 내 병든몸 하나 뉘이고 편안히 죽음을
기다릴 장소조차 없었던 나는 결국 시골에 있는 아버지의 집을 찾아 이렇게 기차에
몸을 싫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과 같은 나의 출현은 그들의 눈에 결코 반가울
수가 없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더욱이 결핵으로 다죽게된 그모습은 더더욱이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고 그래도 부모이기에 병든 나를 지켜주시려는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얼마안되어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막상 나와 갈곳이 없었던 나는 산비탈에 허름한 움막을 빌리고 그곳을 나의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로 정하였다. 지친몸을 뉘일수 있었지만 아무도 찾아주는이없는 그낡은 움막속에서의
나의 삶은 내인생의 가장고통스러운 시간이채워지고 있었다.
움막으로 옮기자마자 나는 각혈을 시작했는데 가슴이 뜨거워지고 울컥 피를 토하고 토하다
이젠 죽는구나 생각하면또다시 숨이돌아오고 살았나 싶으면 또다시 피를 토하는 그러한
생활 도대체 인간의 속에는 얼마나 많은 피가 있기에 이처럼 쏟아도 쏟아도 계속 터져나올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피를 토하며 죽음을 기다리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내가슴속에서 들려오는 생의
본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살고싶어하는 한인간의 처절한 외침이었다.
그래 살고 싶다 나도 살고 싶다 정말 나도 살고싶다는 그 마음의 외침이 가슴속에서 치밀어
올라오자 가장먼저 찾아오는 것은 무서운 배고픔이었다.
언제음식을 먹어보았는지 기억도 없었다. 다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내발걸음을 움직이게
하였고 어느세 나는 눈부신 태양아래 서있었다. 그리고 가장먼저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두나무에 달라붙은 설익은 자두열매였다 나는 그것을 마구 따서 입안에 쑤셔 넣었다.
무슨맛인지를 느낄 겨를도 없이.다만 살기위하여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과수원주인이 눈치를 채고는 하루아침에 그것을 다따가버렸고 나는
또다시 배고픔과 싸워야 했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걷잡을 수 없는 배고픔이 밀려온다.
나는 아무런 의식도 없는 사람처럼 본능적으로 밖으로 나왔고 아랫마을의 한 인가를
지나가다 한농가의 허름한 싸리문 너머로 보이는 부엌의 부뚜막위 소쿠리 안에 하얗게
씻어얹어놓은 쌀을 보게되었다. 그순간 나는 길가의 새우깡봉지하나를 얼른 주워들고
몰래 부엌으로 들어가 봉지에 한 움큼 쌀을 훔쳤다 그리고 수없이 고동치는 가슴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와 나무에 불을 피웠다 아 얼마나 그리운 냄새인가 얼마만에 맛보는
밥인가 허겁지겁 맨밥을 쑤셔 넣다 나는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쏟아지면서 목이메여왔다.
이것도 사람이 사는 것인가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을 눈물 콧물에 범벅되어
먹었다 외이리 맛있는지 하지만 밥이 맛있으면 맛있을수록 서러움도 한없이 커져만 갔다.
또다시 배고픔이 찾아온다 나는 어두운 밤에 낡은 가방을 하나 메고 허기적 거리며 나간다.
몇 일전부터 보아온 한 밭을 향하여 나는 소리 죽여 다가갔다. 아마도 서울서 자란
나에게 그곳은 감자밭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두렁에 다다라 가장자리의
나무하나를 뽑아 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뿌리에는 감자가 하나도 달려있지
않는 것이아닌가 마침 어스름이 달빛이 비치고 그빛에 나무를 비추어보니 가지에 조그마한
것이 달려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고추였다 그곳은 감자밭이 아니라 고추밭 이였던 것이다.
배고픔을 이기려 이곳까지 기다시피 왔건만 겨우 고추밭이라니 나는 그 두렁에 주저앉아
하늘을 보며 한없이 울었다. 가슴속의 한을 끄집어내며 소리 없는 통곡했다.
그래 나는 짐승이다 살려고 몸부림치는 짐승일 뿐이다
벌써 찬바람이 불어온다 새벽이 되니 너무나 춥다 외로움에 가슴속까지 사무치는 추위는
온몸을 감싸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고독이 무서워지면 나는 가슴속에 사진을 한 장 품는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불러본다 어머니 가슴속에 맺힌 한스러운 이름 어머니~그러면 또다시
서러움에 가슴이 복받치지만 나는 소리를 내어 울 수가 없다. 소리내어 울면 또다시
기침이 나고 기침이 나면 또 피가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마음껏 소리내어 울 자유까지
빼앗겨버린 서글픈 인생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 기만한다
오렛만에 순천의 요양소에서 입원해 있는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산에 가면 우리 같은
결핵 환자들을 치료하여 주는 병원이 있는데 거기서는 밥도 주고 잠도 재워준단다.
나는 그이야기에 귀가 솔깃했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가방하나 들고 그곳을 찾아 떠났다.
하지만 결코 치료를 위함이 아니었다. 베고픔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외로움이 너무 힘들어서
다만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밥을 배불리 먹고 춥지 않은 곳에서 잠을 자며 외롭지
않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이기에 고통스럽게 토해내던 내가슴의 피로 얼룩진 그 움막을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던 한 마리의 짐승과 같은 인간의 흔적이 가득한 그움막을 아무런
미련 없이 그렇게 떠나게 된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배고픔을 잊고 추위를 잊고 살아가리라한 그곳도 9개월이면 퇴원해야하는
만기제도에 의한 운영으로 언제까지 머물 수 없었고 결국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떠돌이
인생의 시작된 것이다.
다만 먹을수 있고 잠만 잘 수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 최고의 삶이라 자위하며 그러다 83년
이른봄 따스한 햇살 속에 나는 전남 순천의 요양소인 평화의 동산으로 오게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내 삶을 바꾸어놓는 새 삶의 터전이 될 줄이야.....
낯설지만 여러 사람들의 따듯한 배려 속에서 조금씩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한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것은 공주 병원에서 함께 있었던 조씨 형님이 나에게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치료를 할 수 없는 중환자로 4년 가까이 병원의 묵인 하에 있었는데 갑자기
병원에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있을 수 없게되었고 그래도 함께 생활했던 나를 생각하고
나에게로 오겠다는 것이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형님과 나는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야 했다. 그분은 너무나 중해서 대소변을 방에서 받아내야 했고 더욱이
자신의 취사를 자신이 해결을 해야 하는이곳에서의 생활은 두사람의 것을 나 혼자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에 나는 깊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래 지금까지 나는 세상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 였다. 그러니 이제는 한번이라도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짐을 하였다. 형님을 살려보자 그렇게만
된다면 나의 인생도 한번쯤은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리라
그후 자신에대한 모든애착을 포기하고 그형님의 돌보는 일을 시작하였다.
새벽5시 과일과 당근을 갈아 쥬스를, 8시 아침죽, 1시 이유식, 1시 점심죽, 4시 다시
간식, 7시 저녁, 11시 다시 간식 이것이 나의 하루의 일과가 되었고 그가운데서 처음으로
기쁨을 얻게 되었다.
나도 이제 사람답게 사는 것이라는 그 기쁨음 정말 큰것이었다. 내손으로 누군가를 도울수
있다는 그기쁨은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할수 있게해 주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그리고 한달 두달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처음의 자신감과
기쁨은 점점 사라지고 마음에 심한 번민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속에서 느껴야만하는 참담함 이었다 아무리 내가 변을 받아내고 밥을
먹여주어도 밤새도록 잠못자며 끙끙 앓는 그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나는 바라만
볼뿐 그어떠한 것으로도 그의 고통은 해결해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기만 하던 어느 날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동산의
중앙에 있는 교회로 발걸음을 옮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거운 나무바닦에 무릎을 굻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수 없는 내 한계속에서 그를 살리수 있는 길은 이길밖에 없음을 느끼면
기도를 하게 되었다. 어릴때부터 기독교 신앙인이었지만 나는 그하나님을 버린지가 오레되어
어색했지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진실한 가슴으로 기도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 당신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내가 압니다. 조 형님을 살려 주십시오 만약 당신이
형님을 살려 주신다면 나의 남은 인생을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도
그를 데려가신다면 나는 평생당신을 저주하며 살겠습니다.
그날부터 나의 기도는 계속되었다. 시간만 나면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그 기도만을 계속했다.
그것만이 내가할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기에 신앙의 힘이 있었는지 어려움의 시간을 조금씩
견디어갈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달이 채 못된 어느날 부슬비가 소리없이 내리던 그 일요일 아침 그는
끝내 내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렇게도 살려보고싶었던 나의 열망을 뒤로한체 그렇게............
3일동안의 장례를 치르고 함께 했던 방을 청소하던 나는 가슴속에서부터 분노의 물결이
밀려왔다. 왜 또 그를 내게서 데려갔나 왜 내 소중한 사람들은 다 죽어야만하나 그렇게
눈물 흘려 기도했는데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왜 왜 그토록 정성을 다해 기도했는데
왜? ? ?
그러다 갑자기 오랫동안 잊었던 느낌이 가슴에 차오는 것을 느꼈다 뜨듯하고 기분나뿐
그느낌 순간 울컥하며 터져나오는 것은 바로 붉은 핏덩어리 였던 것이다.
그래도 오렌동안 각혈을 하지 앓고 잘살아왔었는데 아마 그 동안의 피로와 허탈감이 나를
약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핏덩이가 되어 가슴이 터져버리듯 쏟아져 나온 것이다.
얼마나 각혈을 했을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내방의 한자리에 누어있었고 그날부터 다른
이들의 손에서 죽을 받아먹는 상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도 사람답게 살아보려던 나의 계획은 오히려 나의 상태만 악화를 시키고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어느 날인가 동산의 자매들이 죽을 끓여서 가져와 먹여주며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수경씨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을 믿고 의지하세요!
그 말에 듣는 순간 나는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만약 하나님이
내앞에 있으면 당장 모가지를 밟아 비틀어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그렇게 미쳐 날뛰는 나에게
놀란 그들은 가버렸고 나는 또다시 각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어느날인가 그날은 모든 동산의 형제들이 회의를 하기위해 한자리에 모였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에 각혈을 하게되었고 도무지 그치지 앉자 나는 불안해 지기
시작하였다. 그순간 내눈앞에는 노란 불빛과 검은 빛이 보여지는데 순간적으로 손만 내밀어
그것을 잡으며 죽는 것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순간 나는 피를 받던 스레기통을 들고
창가로 다가가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달라고 그리고 쓰러져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고 정신을 찾아을때는 깊음 어둠과 적막이 모든 것을 다 삼키운 늦은
시간이었다. 나는 왠지모를 차분한 마음속에서 나의 지나온 인생을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 고통스러운 하나하나의 시간과 삶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내 마음에 들려오는 무엇이라
표현할수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소리는 아주 부드럽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수경아 내가 너를 떠나있던 것이 아니라 네가 나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가 나는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얼마나 울었을까 차창
밖으로 희뿌연히 아침이 밝아오는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속에는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를 희망이 가슴을 벅차게 하는데 차창에 비쳐오던 햇살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후로도 7년 나의 병상 생활은 계속 이어졌지만 나는 더 이상 내 인생의 시간을 아픔과
고통의 시간으로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비록 몸은 병들어있지만 삶은 그누구보다 건강한
인생으로 참된 삶의 의미를 가지고 살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89년 나는 광주에 있는 기독병원에서 폐 절제 수술을 받을수 있었고 1년을 더
요양한 뒤 90년 비로소 나의 삶의 터전을 세상 속으로 옮길 수 있었다.
당당한 사회의 한사람으로 가치 있는 인생으로 그것은 12년 만에 얻어보는 참된 건강이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내가 치료받은 이곳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많은 결핵 환자들이 질병으로 인하여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고 아픔과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더욱이 열악한 치료의 여건은 더욱 우리네
가슴앓이들을 슬프게 한다.
사회에 치이고 가정에 치이고 환경에 치이고 결국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삶은 그어느것으로도 불행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삶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것이기에 어떠한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잊지말라고 그리고 비록 몸은 병들어도 삶은 병들지 않은 참된 인생을 살아가자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인생은 얼마든지 아름다울수 있음을 있지 말라고.....
얼마전 둘째딸을 얻어서 이제는 딸딸이 아빠가 되었습니다 나의 인생도 사실 덤으로
사는것인데 이제 덤에 덤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첫째딸의 이름음 김하늘 = 하늘처럼 넓은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수 있는 삶을
살아가라 지었고
둘째는 김노을 =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아름다움을 느끼듯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라 지었죠
이처럼 작음 행복을 느낄수 있을 때 그 행복이 비로서 자신의 것이 될 수 있겠죠.
